정정주

‹로비›는 스테인리스 스틸과 아크릴로 제작된 건축 모형 안에 젊은 여성의 퍼포먼스 영상을 결합한 작품으로, 물질과 이미지가 서로를 투과하는 피지털적 구조를 이룬다. 모형 건축물 내부에는 카메라 대신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하고 머리카락 속에 얼굴을 감추는 행위를 반복하는 영상이 설치되어 있다. 투명한 외피의 로비 건물과 그 안에서 스스로를 숨기는 인물의 몸짓은 외부와 내부, 노출과 은폐, 물질과 데이터의 경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로비›에서 조형물은 영상의 물리적 몸체로, 영상은 조형물의 정서적 내면으로 작동한다. 두 매체가 서로의 실체를 매개하며 구축하는 감각적 구조 속에서, 현실과 가상의 층위는 분리되지 않고 공명한다. 이때 작품은 디지털 이미지가 물질의 표면을 빌려 감정의 공간을 형성하는 순간을 포착하며, 피지털 시대의 예술이 감각과 내면, 현실과 재현의 관계를 새롭게 경험하게 하는 방식을 보여준다.